http://www.glimpsefromtheglobe.com/regions/5483/
이번 학기에 교내 신문사 Glimpse from the Globe 의 신입 기자가 되었다. 전문 분야는 동아시아 정치/경제인데, 라스베가스 사고가 미국에서는 워낙 큰 소식이어서 소속 기자들이 협동하여 쓰는 Weigh-in 을 통해 나의 생각을 처음으로 투고하게 되었다. 총기사고나 테러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한국에서 1n년을 살았던 나로서는 이런 주제에 대하여 조금은 둔감했었다. 기사에 더 자세히 쓰고 싶은 부분이 많았지만 글자 수가 제한되었고 사적인 이야기는 기사로 쓸 수 없기 때문에 내 블로그로 옮겨 글을 조금 더 써보고자 한다.
신입생 때 새벽 3시에도 겁없이 학교 주변을 돌아다녔던 내가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된 것은, 라스베가스 사고가 아닌 바로 그 다음 날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이었다. 경영대의 한 강사는 자신의 친구 4명을 라스베가스 사고로 잃었는데, 그 슬픔을 이기지 못했던지 결국 수업 도중 학생들에게 경찰을 부르라며 학생들에게 거짓 총기사고 제보를 시켰던 것이었다. 제보가 접수되고 학교 전체가 즉시 혼란에 빠졌다. 학교 캠퍼스 근처도, 저녁 시간도 아닌 대낮에 경영대에서 총기 사고가 접수되었다고 학생들에게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수업은 중단되고 학생들은 모두 자신의 친구들에게 연락을 걸어 그들이 안전한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행히 국제관계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지만, 내 친구가 경영대 옆 공공정책학교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친구의 안전이 심히 걱정되었다. 국제관계 동아리 단톡방에서는 서로 다른 건물에 있지만 총소리를 들었다는 제보가 쇄도했고, 범인이 학교 중앙도서관으로 움직였다는 소문이 돌면서 모두가 매우 예민해했다. 거짓 제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그 전날 총기사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 소동을 겪으면서,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세월호 사고가 떠올랐다. 정치적인 책임이나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이 주제를 꺼낸 것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실시간으로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보았으며, 가라앉는 배 안에서 학생들이 창문을 두드리는 모습을 지켜만 보아야 했다.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 이후 사회는 무기력과 혼란에 빠졌고, 불안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조 (自助, self-help)를 떠올렸다. 세월호 이후 일어난 지하철 사고에서 시민들은 안내방송을 따르지 않고 자력으로 지하철을 탈출하였다. 다행히도 대다수가 침착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압사 등의 불행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상황 통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권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이었다.
라스베가스 사고로 인해 지역에 일어날 단기적-중기적 경제 침체도 우려가 된다. 세월호 이후 일본행 수학여행을 계획했던 학교들 중 70% 이상이 수학여행을 취소했고 배에 대한 사람들의 무서움 때문에 선박 산업의 매출이 40% 이상 감소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무고한 시민의 죽음은 더 큰 사회적 혼란과 비용을 야기한다. 하메 언니도 지난 주에 라스베가스 등불 축제에 참여하려고 예약했던 호텔을 취소했는데, 취소 불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호텔 측은 은 전액을 환급해주기로 했다. 언니가 거듭 사과하자 호텔 측에서는 다른 손님들도 지금 전부 예약을 취소하는 상황이라며 괜찮다고 전했다 한다. 한 친구는 "어쩌면 지금 가장 안전한 지역은 라스베가스" 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지만, 우리 모두는 혹여 엘에이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미국에서 총기 규제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혹은 원론적인 이야기만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규제가 존재해야만 외양간마저 불타는 꼴을 면할 수 있다. 제도와 규제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고, 그 시민들이 국가에 자신의 생명을 보호할 권리를 위임함으로서 상호 존중 및 앞으로의 범죄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총기사고에 대하여 무지한 편이었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지고 두루뭉술하게 글을 썼지만 나름 보람있었다. 제목은 What comes after mass loss of innocent lives. 무고한 생명들의 죽음 뒤에 무엇이 오는가 라는, 굉장히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글을 쓰려 노력했다. 반면에 다른 친구들은 좀 더 전문적이고 통찰력 있는 글을 썼으니 기회가 된다면 전문을 읽어보고자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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